[번역] "버튜버는 기분 나쁘다." 그래서 어쩌라고? MV '비비디바'에서 읽어내는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도발

[번역] "버튜버는 기분 나쁘다." 그래서 어쩌라고? MV '비비디바'에서 읽어내는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도발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비비디바 <출처: Cover>

3월 23일에 발매되어 2주도 채 되지 않아 약 840만 조회수를 돌파한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신곡 MV '비비디바'. 그 MV의 내용에 많은 시청자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실사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조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압도적인 가창력도 어우러져 댓글란에는 "혁신적인 작품",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영상 기술과 발상에 감동했다"와 같은 감상이 매우 많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지금까지 호시마치 스이세이나 홀로라이브를 모르던 시청자층에도 인기가 확산되고 있으며, 틱톡 등에서도 댄스 파트를 재현한 숏폼 동영상이 다수 게시되고 있다.

후렴구 댄스의 안무나 출연진들의 어수선한 모습 등 팝적인 부분이 있으면서도, 어딘가 마음속 깊은 곳을 뒤흔드는 듯한 이상한 매력을 가진 이 작품. 도대체 왜 모두가 '비비디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인 걸까?

이번에는 이 MV의 매력에 대해 애니메이션 작가/각본가이자 '(실재하지 않는) 클립 채널' 등에도 참여하는 누마타 씨가 기고문을 작성해 주었다.


버튜버 앞에 계속해서 가로막히는 "2차원과 3차원의 장벽"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질 뻔했습니다. 압도적인 영상미와 "팝"함이 어우러진 '비비디바'는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버튜버 뮤직비디오 역사를 다시 쓰고, 심지어 몇 단계를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혁신적인 내용입니다.

너무나도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영상으로서 단연코 유니크한 점입니다. 지금까지 (호시마치 스이세이가 소속된) 홀로라이브는 상업 애니메이션 풍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만들어 온 버튜버 에이전시였는데, 거기서 파생된 것치고는 엄청난 돌연변이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부분이 중요한데요. 이 뮤직비디오 자체가 버튜버가 버튜버로 존재하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기분 나쁨'을 훌륭하게 캐리커처라이즈(풍자적 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애초에 버튜버를 '기분 나쁘다'고 여기는 감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지도 모릅니다(이런 말을 쓰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는 분들에게는 강한 표현을 써서 정말 죄송합니다).

한편으로 버튜버가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로부터 받는 혐오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 의견은 크게 아래 2가지 유형이 주를 이룰 것 같습니다.

  • 애니메이션 스타일 그림 자체에 기분 나쁨을 느끼고, 실시간으로 살아있는 듯 이쪽을 향해 말을 걸거나 움직일 때 기분 나쁨이 더해집니다.
  • 결국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비겁한 사람들이라는 혐오감을 갖게 됩니다.

전자는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죠. 그리고 후자는 별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이런 버튜버에 특별한 흥미가 없는 분들로부터의 다양한 "기분 나쁨"(일부러 "편견"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버튜버 업계 식으로 말하자면 "2차원과 3차원의 벽"에 대해 버츄얼 유튜버들은 지금까지 계속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기분 나쁨"을 일부러 과장하기

버튜버의 실질적인 시작인 키즈나 아이(2022년 2월 무기한 슬립)는 항상 2차원과 3차원의 벽을 돌파하는 미래상을 제시했습니다.

나카타 야스타카가 제공한 'AIAIAI' 뮤직비디오에 그려진 미래상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프레임 안에서 춤추는 버츄얼한 존재 키즈나 아이와 프레임 밖에서 춤추는 댄서들이 클라이맥스에서 겹쳐지는(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영상의 마술일 뿐인) 연출.

탄성을 자아냈던 그 순간을, 저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할 수 있습니다. 버츄얼과 인간이 공존하는 키즈나 아이가 바랐던 세계, 그런 꿈과 신념이 여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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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역시 버츄얼 유튜버가 세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일찍이 실사와 3D 모델의 합성 등으로 평범한 여자아이임을 강조하고,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발신해 온 히구치 카에데 씨도 2021년 인터뷰 당시 버튜버 팬 이외의 층에게 어프로치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버튜버는 섬세한 존재라는 히구치 카에데 씨의 표현은 매우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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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세함에서 오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음악 유닛 노르니스(Nornis)는 노래 한 곡으로 싸우기 위해 멤버인 이누이 코 씨나 마치타 치마 씨의 비주얼을 일부러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소개문에서도 버튜버(Vtuber)라는 단어를 배제함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문을 넓히려는 접근법을 선택했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포코피(코우가류 닌자! 폰포코 & 멋쟁이가 되고 싶어! 피너츠 군)나 오메시스(오메가 시스터즈)처럼 인형 의상이나 얼굴만 AR 합성을 사용해 그대로 현실로 뛰어드는, 애초에 버튜버와 인간은 같은 존재라는 전제의 접근법도 흔해지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최근 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한 기사가 있었으므로 이것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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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버튜버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버츄얼과 인간은 비슷한 존재이며 함께 나란히 설 수 있다고, 결코 기분 나쁘지 않다고 눈물겨운 노력을 거듭하며 계속 전해왔습니다.

하지만 비비디바는 이들과 정반대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즉, 버튜버가 버튜버인 한 계속 따라다니는 '기분 나쁨'을 일부러 작중에서 강조하고 과장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비비디바의 MV 아이디어는 주로 로저 래빗(1988년)에서 힌트를 얻은 듯합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융합 사례는 이 외에도 많은 명작들이 있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사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작품은 그들의 연기를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로저 래빗 콘셉트를 비비디바가 크게 참고했을 것입니다.

또한 단순한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신데렐라 모티프(로저 래빗 무대는 디즈니 판 신데렐라 제작 시기인 1940년대 할리우드), 그리고 해외 만화 스타일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그 영향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버튜버와 인간의 공연이라고 하면 3D 모델을 실사에 교묘하게 합성한 AR(증강현실) 방식 접근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등장 순간부터 최전선에 있는 하나부사 씨는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 동영상과 같은 실시간 합성 라이브나 개인 버튜버 활용 사례(미타마 사쿠마루 씨)까지 그 예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와 다른 접근법 표현은 거의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작은 로저 래빗 스타일을 선택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모습(모델)을 애니메이션 풍 2D 일러스트로 변형해 버튜버와 인간은 전혀 별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나란히 설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 버츄얼을 철저히 이물로, 이형으로 묘사하는 이 접근법은 애초에 흥미롭고 주류 버튜버 뮤직비디오로서 매우 획기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본작은 전체적으로 버츄얼의 이질감과 기형감을 실질적이고 생리적으로 환기시키는(기분 나쁘다고 여기게 하는) 온갖 장치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뇌에 일어나는 위화감을 충분히 활용하기

본작에서 사용된 기법은 "로토스코핑"입니다. 로토스코핑은 먼저 실사로 인간(등)의 움직임을 촬영한 뒤, 그 위에 겹치는 형태로 애니메이션 작화를 하는 기법입니다. 오래전 193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와 그 라이벌이었던 플라이셔 형제가 특히 즐겨 사용했죠. 디즈니의 신데렐라(1950년)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 공주(1937년) 등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 기법은 최근에도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방영 중인 NHK 연속 TV 소설 호랑이에게 날개의 오프닝(애니메이션 작가 시시야마자키 씨)이 로토스코핑의 대표적 예입니다. 그리고 실사의 생생함을 일부러 남긴 사례로는 TV 애니메이션 악의 꽃이 유명하겠죠.

하나는 일부러 이 전통적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미국 애니메이션 황금기 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티프가 된 신데렐라를 비롯해 로토스코핑을 특별히 사용하지 않은 로저 래빗 역시 이 미국 애니메이션 황금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므로, 이런 빼놓을 수 없는 맥락을 충분히 의식해 기법을 선택한 것이죠.

또 하나는 이 로토스코핑을 극단적으로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뇌에 일어나는 위화감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메이킹 영상인데요. 몸과 머리를 일부러 각기 다른 애니메이터에게 의뢰해 작화했음을 보여줍니다.

강철의 연금술사 등으로 유명한 이리에 야스히로 감독의 트윗도 매우 참고가 됩니다.

인간의 움직임 그 자체를 트레이싱함으로써 그림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인데 움직임은 인간 그 자체, 인간의 움직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머리 부분에는 붙여 넣은 것처럼 애니메이션 얼굴이 달라붙어 있다는 극히 부자연스러운 영상이 탄생합니다. 마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으로 보는 것이 어긋나 있는 것 같은 매우 불편한 위화감이 영상에 교묘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입니다.

백미는 처음 후렴구입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달라붙은 얼굴로 인간 같은 척하며 춤을 춥니다. 리얼한 인간의 움직임과 그 위에 가면처럼 딱 달라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얼굴. 자세히 볼수록 꽤나 기괴한 영상 아닐까요?

로토스코핑은 실로 다채로운 기법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다운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본작에서는 일부러 인간다운 생생한 움직임이 남겨져 있습니다.

즉, 조금 더 메워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불쾌한 골짜기를 일부러 그대로 두고, 아니 오히려 강조해서 애니메이션에도 인간에도, 그 어느 쪽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위화감 있는 영상을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이 위화감이 바로 버튜버에게 자주 쏟아지는 기분 나쁨 중 하나, 즉 외모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인데 안에는 인간이 있다는 불쾌한 골짜기 같은 구도 그 자체 아닐까요? 게다가 대단한 건 이 이면까지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화려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세계. 그 반대편을 보면 초라한 무대 뒤에서 함께 -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 춤을 추고 있는 현실 쪽의 인간들. 이형의 존재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춤추게 만들어지고 있는 존재! 제가 가장 비명을 지르게 될 뻔한 장면입니다.

인간의 흉내(춤)를 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리고 그 이면에서 그 위화감에 마비된 채로 똑같이 춤추게 만들어지며 열광하는 사람들. 그것은 마치 생방송이나 실제 라이브에서 버튜버의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인간의 모습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버튜버 세계 외부의 사람들이 아, 기분 나빠!라고 생각하기 쉬운 애니메이션 캐릭터 따위에 열광하는 팬의 구도 그 자체 아닐까요!

이처럼 로토스코핑의 특성을 충분히 활용해 상징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애니메이션도 리얼한 인간도 아닌 버튜버라는 존재의 이질감이며, 나아가 그것을 실제 영상과 연결함으로써 그 기묘한 존재에 의해 춤추게 되는 인간들이라는 구도까지 비추는 데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러 불쾌한 골짜기를 파는 시도

본작의 또 하나의 독특한 점으로는 전편에 걸쳐 소위 360도 카메라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무대는 촬영 스튜디오인데도 모두가 보고 있을 주 카메라의 시선은 시작 몇 초 만에 벗어나 버립니다. 대신 그려지는 것은 평소에는 카메라에 비치지 않는 이면 - 360도 카메라가 효과적으로 포커스하는 공간 그 자체입니다.

저쪽과 이쪽을 분명히 구분하는 그 구도는 2차원과 3차원의 경계, 단절을 부득이하게 관객에게 의식시킵니다. 이 또한 둘은 나란히 설 수 없으며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둘이 그 경계에서 만나고 있을 때는 카메라의 방향도 그 중간 근처에 놓여집니다.

그리고 카메라의 기계적인 패닝(가로 이동)은 마치 이 촬영 스튜디오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같습니다. 특히 이 후렴구 부분에서는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기묘한 댄스에 열광하는 인간들)을 극히 냉정한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로토스코핑, 몸과 얼굴을 구분해서 그리는 독자적인 작화, 그리고 360도 카메라의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선. 다양한 기법을 교묘히 조합해 이 위화감 있는 영상이 - 불쾌한 골짜기를 일부러 강조한 영상이 구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들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부득이하게 던져지는 버튜버의 고정관념적인 기분 나쁨을 훌륭하게 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본작에서 불쾌한 골짜기를 강조하고 있는 장치로 캐릭터 디자인에도 주목할 만합니다.

본작은 세계적 흐름인 헤이세이 리바이벌 풍 애니메이션 캐릭터, 로저 래빗 풍의 툰 이미지, 그리고 #indie_anime의 탈상업적 무브먼트를 교묘히 도입한 비주얼을 선보입니다.

호시마치 스이세이는 버튜버이므로 이미 2D 일러스트 디자인이 있지만, 일부러 현대풍 디자인 대신 올드 패션한 눈동자가 큰 여자아이를 사용해 실사와 합성 시 애니메이션이라는 이물감을 강조합니다.

MV의 합성 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전체 구성, 움직임의 아이디어, 작화, 촬영 처리, 편집 기술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합니다. 이로 인해 실사 속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인간처럼 움직이는 위화감이 더욱 부각됩니다.

본작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현장에서 제법 소중히 여겨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 쪽이 훨씬 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자, 여기 앉으세요, 하며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신경 써지고 그에 미안한 듯이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앉는 장면은 상당히 의도적입니다.

그렇게 아랫사람인 인간에게 감정 이입을 충분히 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이내 감독에게 격분해 신겨 있던 유리 구두를 던집니다. 이렇게나 추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요(잘 생각해 봐도 스태프의 처우가 나쁜 것에 화내는 것과 아무리 상대에게서 받은 것이라고는 해도 구두를 던지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그녀의 폭력이죠).

몸싸움 끝에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현장을 뛰쳐나가 멋대로 스튜디오를 떠나 버립니다. 신고 있던 유리 구두를 벗어 던지는 묘사는 물론 솔직하게 주어진, 강요된 역할에서 자유로워진 카타르시스를 그리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런 것을 벗어 던지는 것만으로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우쭐한 사고방식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스스로 신데렐라임을 벗어 던진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인간과 같은 멋진 옷을 걸치고 만족스러운 듯이 춤을 춥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것은 너무나 상업적인 영상이나 광고 비주얼에서 보았을 법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흔한 평범한 댄스 영상입니다.

버튜버라는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려 버린(스스로 풀어 버린) 존재는 나름대로의 자유를 여기서 만끽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양산형인 대다수에 파묻혀 버리는 것이었죠.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결말인가요.

아니, 오히려 도입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버튜버의 퍼포먼스에 비겁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이쪽일지도 모릅니다. 너희들, 애니메이션 껍데기를 쓰고 떠받들어지고 있지만, 일단 그것이 없어지면 결국 그저 평범하고 재미없는 인간일 뿐이겠지? 라고 말이죠.

그리고 사실 여기에 비치고 있는 것은 이제는 애니메이션 머리(와 맨살의 손)가 달라붙은 채로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뮤직비디오라는 점

이렇게 비비디바는 버튜버가 오랫동안 노출되어 온 너희들 기분 나쁘지?를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2D 애니메이션 대 실사라는 구도로 만들어 정면에서 작품에 도입하고, 과장하며, 끝내 자학적인 풍자로 승화시켜 충분히 녹여냈습니다. 그럼에도 압도적으로 스타일리시하고 독특한 영상으로 완성했죠.

여기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인간이 공존하는 멋진 세계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버츄얼이라는 존재의 기분 나쁨을, 그리고 버튜버의 고정관념적 편견을 극히 노골적으로 강조해 그리고 있습니다. 너무나 훌륭하게 과장된 악몽 같은 버튜버의 기분 나쁨의 집합체입니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의 기분 나쁨에는 분명 중독성이 있습니다. 몇 번이고 보게 됩니다. 푹 빠져들게 되죠. 이유는 하나입니다. 매우 팝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가치의 전환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모두가 여러 가지 접근 방식으로 지우려 하거나 덮으려고 했던 버튜버라는 존재의 위화감을, 장벽을 이토록 메인스트림에서 당당히 키치(일반적인 미의식과는 다른 악취미)로 표현해 버리는 발상 자체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아, 이런 광맥이 있었다니!

중요한 건 이것을 만약 버튜버가 아닌 아티스트가 발표했다면, 하는 점입니다. 버튜버의 고정관념을 추하게 과장해 비웃는 듯한 내용이라면 혹여 논란의 불씨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뮤직비디오입니다. 하필이면 탑 아티스트 버튜버인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호시마치 스이세이는 버튜버로는 처음으로 THE FIRST TAKE에 출연한 아티스트죠.

*역자주: THE FIRST TAKE란? 가수를 초대하여 원테이크로 녹음된 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일본의 유튜브 채널 (한국의 딩고 라이브와 유사)

솔직히 저는 그렇게까지 호시마치 씨의 활동을 샅샅이 쫓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 THE FIRST TAKE 출연에는 큰 공감이 갔습니다.

수많은 오리지널 곡과 라이브 퍼포먼스, 커리어를 통한 음악에 대한 스토익한 아티스트 활동. 게다가 후술할 내용처럼 버튜버에 관심 없는 외부 사람들을 향해 엄청나게 발신하고 있는 분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라면 이런 자리에서도 버튜버로서가 아니라 뮤지션으로 봐줄 가능성이 있어 그 도전에 걸맞은 매우 좋은 인선이라고 생각했죠.

호시마치 씨는 이 동영상 댓글란에서 조금 특이한 외모를 하고 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즐거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이는 버튜버의 자기소개로서 매우 간결하고 절제된 좋은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리얼한 아티스트가 서 있던 무대에 버튜버가 출연하는 것에 대해 역시 제법 이질감도 일어났던 걸로 기억하지만, 모든 외부의 목소리에 대해 이 부드러운 인사를. 그리고 큰 무대에도 스토익하게 꼿꼿이 맞섰던 그 모습은 노래가 흘러나왔던 그 멋진 순간을 포함해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에게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나카이 마사히로의 CM으로 유명한 데레스테군요)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은 분도 바로 이 분입니다.

다양한 IP와의 콜라보로 유명한 데레스테지만,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게임 내 아이돌로서 그대로 호시마치 스이세이가 등장한다"는 콜라보라기보다는 "기간 한정 가입"과 같은 대대적인 내용이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THE FIRST TAKE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완전히 독립적인 캐릭터(현실과는 분리된 세계의 사람들) 속에 "현실에 살고 있는" 버튜버가 들어가는 형태네요. 그 "폐쇄된" 세계를 믿고 지켜 온 팬 분들의 저항감은 역시 상상 이상일 겁니다. 한 번이라도 가입해 버리면, 그녀 또한 "신데렐라 걸즈"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두려움은 또한 예전부터 아이마스의 대 팬으로 알려진 호시마치 씨가 가장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대 팬이었기에 해낼 수 있었던 일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열린 호시마치 씨의 6주년 기념 라이브에 데레마스에서 타카가키 카에데 씨를 서프라이즈 게스트로 초대한 것이죠.

두 사람 모두 조금 특이한 외모를 하고 있는 아이돌이지만, 데뷔 후(발매 후)의 경력에서는 두 배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녀와 비교하면 역시 아직 초보자인 호시마치 씨, 그리고 "선구자"인 선배로서 여유마저 느껴지는 MC와 퍼포먼스를 펼친 타카가키 씨. 서로에 대한 자부심 높은 리스펙트로 가득한 매우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외부"를 향한 (하나의) 훌륭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참고로 이 라이브가 "비비디바"의 첫 공개 무대이기도 했는데, "신데렐라" 모티프 겹침이 과연 우연일까요?

Midnight Grand Orchestra라는 음악 유닛도 흥미롭습니다! 파트너인 음악가 TAKU INOUE 씨를 "2차원"으로 불러들이기도 하고, 반대로 호시마치 씨를 "3차원"으로 내보내기도 하며, 아예 두 사람 모두 하이퍼리얼한 세계로 날아가 버리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2차원과 3차원의 실험장"과 같은 독특한 시도가 매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도전적인 활동은 역시 주목을 끌 수밖에 없겠죠.

NHK 종합의 설 황금 특집(될 예정이었으나 2024년 노토반도 지진 발생으로 무산되었습니다) "새로운 TV" 출연도 저에게는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게 이 숏폼 동영상입니다. 다루고 있는 "버츄얼 흔한 일"이 분명히 버튜버에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분들을 향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버튜버로서 이토록 화려한 경력이 있는 분이 말이죠. "아, 이 분 또한 문제 의식이 매우 강하고 외부를 향해 발신하는 분이구나. 그리고 그것을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는 분이구나"라고 느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호시마치 스이세이 씨는 철저하게 버튜버 계에 "외부"와 싸우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적어도 저에게는 강렬하게 있었습니다. 마음 없는 말을 해 버리자면 일부러 최전선에 스스로 서서 본래는 피할 수 있었을 탄환도 마구 맞고 있는 분이기도 한 것 같은.

그런 활동을 여기저기서 계속하다 보면 이 기사에서 줄곧 열거해 온 것처럼, 그리고 이 비비디바 뮤직비디오에서 노골적으로 강조한 것처럼 그런 기분 나쁘다는 시선과 말, 편견에 온갖 곳에서 계속 노출되어 왔고 또 그것을 받아들여 왔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팀이(일부러 "팀"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지혜를 짜낸 끝에 내놓은 2분 51초의 통렬한 카운터 펀치.

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버튜버는 기분 나쁘지?"라는 외부로부터의 무정한 압력에 이런 도발적인 해답 방식이 있었다는 것을요.

"움직이는 그림"인 자기 자신의 특징을 일부러 과장하고 당당히 사람들 앞에 나서는 힘을. 차별과 편견을 역이용해 그것을 연기함으로써 오히려 그 벽을 무너뜨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건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져 온 대항 문화와 확실히 연결되는 것임을.

"내가 '기분 나쁜' 나 그대로 등장하는데,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라고 말이죠.


네. 우리들, 기분 나쁘지만 그게 어때서요?

본작과 같은 대항 작품은 역시 문화로서 성숙해지지 않으면 좀처럼 나오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비비디바의 성립은 그만큼 버튜버라는 작은 문화가 세월과 경험을 쌓아 온 증거이기도 합니다.

호시마치 스이세이는 결코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감동했던 포인트였죠. 그런데 비비디바의 뮤직비디오가 저에게 두 작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나는 미키토P의 "로키"입니다.

보컬로이드의 탑 크리에이터인 미키토P가 스스로 보카로P와 가수들의 리얼을 자학적이고 생생하게 풍자한(그리고 고무한) 곡입니다. 그 과격한 내용은 물론이고, 바로 곡 중에서 이름이 거론된 가수들이 신나게 이 커버 음원을 업로드해 간다는 아이러니한 전파 방식도 매우 인상 깊었죠.

비비디바 역시 뮤직비디오 내에서 이 정도로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댄스를 일부러 버튜버들에게 시키고(모션 데이터까지 배포해서) 마음껏 확산시키려 한다는 점이 정말 짓궂다고 할까, 바로 "로키"와 비슷한 컨셉트를 느끼게 합니다. 또 하나는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고난을 충격적으로 그린 뮤직비디오는 본국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9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최우수 레코드를 비롯해 뮤직비디오상 등도 수상했죠. 참고로 감독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소수자에 해당하는 일본계 미국인 히로 무라이입니다.

과연 This Is America와 비비디바를 같은 식으로 다루기에는 좀 꺼림칙하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오리지널 컬처에 대한 리스펙트와 그 대면 방식, 전체를 뒤덮는 기묘함과 스타일리시함, 그리고 차별받는 계층의 절규와 닮은 메시지는 저는 공통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배우, 코미디언, 뮤지션으로서 전성기였던 당시의 차일디시 감비노와 지금의 호시마치 스이세이에게는 어딘가 겹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호시마치 스이세이는 버츄얼 세계의 블랙 뮤직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버츄얼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버츄얼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의 틀리지 않은 답변일 겁니다. 하지만 2024년, 완전히 새로운 돌파구가 여기서 열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좀 더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본 콘텐츠는 2024년 4월 8일 Mogulive에 게재된 칼럼 "【寄稿】「VTuberは”気持ち悪い”。だから何?」 MV『ビビデバ』から読み解く星街すいせいの挑発"를 번역한 것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 글은 원저작자의 요청에 따라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