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비탈릭 부테린: 비트코인 블록 사이즈 전쟁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최근에 저는 2010년대 비트코인 블록 사이즈 전쟁에 대한 두 권의 주요 역사 서적을 반대 관점에서 읽었습니다 (또는 오디오로 들었습니다):
- 조나단 비어의 "블록사이즈 전쟁"은 블록 사이즈를 작게 유지하자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 로저 버와 스티브 패터슨의 "비트코인 하이재킹"은 블록 사이즈를 크게 늘리자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제가 직접 겪고 어느 정도 참여했던 사건에 대한 이 두 가지 역사를 읽는 것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대부분의 사건들과 양측이 갈등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은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몰랐거나 완전히 잊고 있었던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고, 새로운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당시에 저는 "큰 블록 지지자"였지만, 수수료가 절대로 0보다 크게 오르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나 과도한 블록 사이즈 증가에는 반대하는 실용적인 중도파였습니다. 그때 제가 가졌던 생각을 지금도 지지하는 걸까요? 저는 그것이 궁금했고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조나단 비어의 설명에 따르면, 작은 블록 지지자들은 블록 사이즈 전쟁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블록 사이즈 전쟁의 원래 논쟁은 간단한 질문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비트코인은 블록 사이즈 제한을 당시 1MB에서 더 높은 값으로 올리기 위해 하드 포크를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면 비트코인이 더 많은 거래를 처리할 수 있고 수수료가 낮아지겠지만, 노드 운영과 검증이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게 됩니다.
조나단 비어의 책은 작은 블록 지지자들이 노드 운영을 쉽게 유지하기 위해 블록 사이즈를 조금만 늘리자는 보수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내용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프로토콜 수준의 이슈들이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인상을 줍니다. 작은 블록 지지자들의 견해는 프로토콜의 변경(특히 "하드 포크")은 매우 드물게, 그리고 프로토콜 사용자들의 매우 높은 수준의 합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결제 처리업체와 경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이미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비트코인은 훨씬 더 독특하고 특별한 것이 되려고 합니다: 중앙 조직과 중앙 은행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화폐입니다.
만약 비트코인이 매우 활발한 거버넌스 구조를 갖게 되거나(블록 사이즈 매개변수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조정을 해결하는 데 필요함) 채굴자, 거래소 또는 다른 대기업들에 의한 조직적인 조작에 취약해진다면 이 귀중한 고유한 장점을 영원히 잃게 될 것입니다.
비어의 설명에 따르면, 큰 블록 지지자들이 작은 블록 지지자들을 가장 크게 불쾌하게 만든 것은 종종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큰 플레이어들을 모아 그들이 선호하는 변화를 합법화하고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거버넌스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블록 지지자들의 견해에 위배됩니다.
로저 버의 설명에 따르면, 큰 블록 지지자들은 블록 사이즈 전쟁을 어떻게 보았나요?
큰 블록 지지자들은 일반적으로 핵심적이고 객관적인 질문에 초점을 맞춥니다: 비트코인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가치 저장 수단인 디지털 금이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지불 수단인 디지털 현금이 되어야 할까요?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분명했던 것은 원래의 비전, 그리고 큰 블록 지지자들이 모두 동의한 비전은 비트코인은 바로 디지털 현금이라는 것입니다. 백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큰 블록 지지자들은 또한 사토시가 쓴 다른 두 가지 사실을 자주 인용합니다:
- 백서의 간소화된 지불 검증(simplified payment verification) 부분에서는 블록이 매우 커지면 개별 사용자들이 전체 체인을 검증할 필요 없이 머클 증명을 사용하여 자신의 지불이 포함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비트코인토크(BitcoinTalk)에서 블록 사이즈 증가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하드 포크를 지지하는 인용문:
큰 블록 지지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의 초점이 디지털 현금에서 디지털 금으로 바뀐 것은 본래의 비전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소수의 핵심 개발자들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큰 블록 지지자들은 이 개발자들이 자신들끼리 문제를 고민하고 결론을 내린 후, 마치 그것이 전체 프로젝트에 적용되어야 할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큰 블록 지지자들은 소수의 개발자들이 비트코인의 방향성을 임의로 바꾸고 그들의 의견을 프로젝트 전체에 강요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작은 블록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 수단(디지털 금)과 지불 수단(디지털 현금)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안했습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비트코인을 두 개의 레이어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레이어(레이어 1)인 비트코인 블록체인 자체는 가치 저장에 초점을 맞추고, 두 번째 레이어(레이어 2)에서는 라이트닝 네트워크와 같은 추가 프로토콜을 통해 블록체인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저렴한 지불 기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저 버는 이러한 솔루션이 실제로는 매우 불충분하다고 보았으며, 그의 책에서 이에 대해 상세히 비판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사용한다고 해도 수억 명의 사용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블록 사이즈를 늘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 코인을 안전하게 받으려면 사용자가 항상 온라인 상태의 노드를 운영해야 하고, 코인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블록체인을 확인해야 하는 등 기술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버는 이런 복잡성 때문에 사용자들이 불가피하게 중앙화된 방식으로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들의 견해의 핵심 차이는 무엇일까요?
버의 객관적 논쟁에 대한 묘사는 작은 블록 지지자들의 묘사와 일치합니다: 양측 모두 작은 블록 지지자들이 노드 운영의 용이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큰 블록 지지자들은 저렴한 거래 수수료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들은 모두 합리적인 신념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차이가 논쟁을 유발한 핵심 요인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비어와 버의 더 깊은 근본적인 견해에 대한 묘사는 크게 다릅니다. 비어에게 작은 블록 진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체인을 장악하려는 채굴자와 거래소의 작지만 강력한 카르텔에 맞서 사용자들을 대변하는 입장입니다. 작은 블록은 일반 사용자들이 노드를 운영하고 체인을 검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비트코인의 탈중앙화를 유지합니다.
반면 버에게 큰 블록 진영은 작은 블록 로드맵이 필요로 하는 레이어 2 솔루션을 구축하여 이익을 얻는 자칭 대제사장들과 VC 자금을 지원받는 회사들(즉, 블록스트림)의 작지만 강력한 카르텔에 맞서 사용자들을 대변하는 입장입니다. 큰 블록은 사용자들이 중앙화된 레이어 2 인프라에 의존할 필요 없이 계속해서 온체인 거래를 감당할 수 있게 함으로써 비트코인의 탈중앙화를 유지합니다.
비어의 책과 버의 책에서 양측의 입장을 기술하는 방식은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비어의 책은 큰 블록 지지자들의 선의는 인정하고 작은 블록 지지 포럼 중재자들의 반대 의견 검열에 대한 그들의 불만이 타당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큰 블록 진영의 무능함을 자주 비판합니다. 반면 버의 책은 작은 블록 지지자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거의 비판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악의적인 의도나 심지어 음모론까지 덧씌우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두 책이 블록 사이즈 논쟁의 양측을 묘사하는 데 있어 대조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해당 논쟁은 제가 몇 번이나 들었던 흔한 정치적 비유, 즉 "우파는 좌파가 순진하다고 생각하고, 좌파는 우파가 악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 설명에 따르면, 저는 블록 사이즈 전쟁을 어떻게 보았나요? 그리고 오늘날 어떻게 보고 있나요?
비트코인 블록 사이즈 전쟁을 직접 경험하는 동안, 저는 큰 블록 지지자들의 편에 섰습니다. 큰 블록 진영에 대한 제 공감은 몇 가지 핵심 사항에 집중되었습니다:
- 비트코인의 주요 초기 비전은 디지털 현금이었고, 높은 수수료는 그 사용 사례를 죽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레이어 2 프로토콜이 훨씬 더 낮은 수수료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 개념 자체가 매우 검증되지 않았고, 작은 블록 지지자들이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실제로 얼마나 잘 작동할지 거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은 블록 로드맵을 고수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했습니다. 요즘에는 라이트닝 네트워크에 대한 실제 경험으로 인해 비관적인 관점이 훨씬 더 일반화되었습니다.
- 저는 작은 블록 진영의 "상위 수준(meta-level)" 스토리에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블록 지지자들은 종종 "비트코인은 사용자들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용자들은 큰 블록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용자"가 누구인지 또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측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큰 블록 지지자들은 암묵적으로 해시파워, 유명 기업의 공개 성명, 소셜 미디어 담론 등 최소한 세 가지 방법으로 사용자를 계산하려 했고, 작은 블록 지지자들은 각각을 비난했습니다. 큰 블록 지지자들이 뉴욕 합의를 조직한 것은 그들이 "카르텔"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큰 블록 지지자들이 뉴욕 합의를 조직한 것은 작은 블록 지지자들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모든 변경에 대해 "사용자" 간의 "합의"를 주장했기 때문이며, 주요 이해 관계자들의 서명된 성명서는 큰 블록 지지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실용적인 접근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 작은 블록 진영에서 블록 크기를 약간 늘리기 위해 채택한 제안인 세그윗(Segregated Witness)는 단순한 하드 포크 블록 크기 증가에 비해 불필요하게 복잡했습니다. 작은 블록 진영은 결국 "소프트 포크 좋음, 하드 포크 나쁨"이라는 종교를 채택했고(저는 이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비어가 인정하는 심각한 복잡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 규칙에 맞추어 블록 크기를 늘리는 방식을 설계했습니다. 이는 많은 큰 블록 지지자들이 그 제안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작은 블록 지지자들이 단순히 "신중함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제에 맞았기 때문에 한 가지(하드 포크 없음)를 다른 것(깨끗하고 단순한 코드와 명세 유지)을 희생시키면서 신중함의 서로 다른 유형 중에서 임의로 선택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큰 블록 지지자들도 "깨끗하고 단순함"을 버리고 비트코인 언리미티드(Bitcoin Unlimited)의 적응형 블록 크기 증가와 같은 아이디어로 들어갔는데, 이는 비어가 (당연히) 그들을 비난한 결정이었습니다.
- 작은 블록 진영은 정말로 그들의 견해를 강요하기 위해 매우 불쾌한 소셜 미디어 검열 행위에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해커 데이모스(Theymos)의 악명 높은 발언인 "/r/Bitcoin 사용자의 90%가 이러한 정책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이 /r/Bitcoin 사용자의 90%가 떠나기를 바랍니다"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버의 책은 주로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첫째, 비트코인의 원래 목적인 '디지털 현금'로서의 역할, 둘째, 작은 블록 진영이 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 검열에 관여한 것, 셋째, 비트코인 프로토콜 변경에 있어 채굴자들의 역할입니다.
또한 이 책은 작은 블록 지지자들의 재정적 동기와 관련된 위법 행위 이론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구체적으로, 작은 블록 지지자들이 블록스트림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비트코인 위에 레이어 2 프로토콜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비트코인 레이어 1을 계속 무력화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옹호함으로써 자신들의 상용 레이어 2 네트워크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한편, 버는 비트코인 거버넌스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 이는 그가 "비트코인은 채굴자들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는 제가 어느 쪽도 동의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저는 모호한 "실제로 정의하기를 거부하는 사용자의 합의"와 극단적인 "채굴자들은 인센티브가 일치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 모두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몇 가지 핵심 사항에 대해 큰 블록 지지자들에 대해 엄청나게 좌절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비어의 책에서 반복된 점들이었습니다. 가장 최악인 것 중 하나는 (저와 비어 모두에 따르면) 큰 블록 지지자들은 블록이 얼마나 커져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한계 원칙에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관점은 "블록 크기는 시장에 의해 설정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채굴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블록을 크게 만들어야 하고, 다른 채굴자들은 그러한 블록을 수락하거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고, 그러한 메커니즘이 시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장" 개념의 극단적인 확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큰 블록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독립적인 체인(Bitcoin Cash)으로 분리되었을 때, 그들은 이 견해에서 벗어나 32MB의 블록 크기 제한을 추가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실제로 블록 크기 제한을 결정하는 방법에 대해 원칙적인 추론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18년 게시물에서 인용하자면: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서 데이터를 읽는 비용(노드 운영 비용)의 예측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블록체인에 데이터를 쓰는 비용(트랜잭션 수수료)의 예측 가능성은 어느 정도 희생하는 설계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계 결과,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읽기 비용 측면에서는 매우 안정적이고 건강한 결과를 얻지만, 쓰기 비용 측면에서는 비용 예측이 어려워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반면 이더리움은 현재의 거버넌스 모델 하에서 블록체인의 읽기 비용과 쓰기 비용 양측 모두에서 적절한 수준의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즉, 이더리움은 읽기 비용과 쓰기 비용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트윗에서 이 관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블록체인에 데이터를 쓰는 비용(즉, 거래 수수료)과 블록체인에서 데이터를 읽는 비용(즉, 노드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 요구사항)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상적으로는 블록체인 사용 수요가 100배 증가할 때, 이에 따른 부담을 읽기 비용과 쓰기 비용에 균등하게 배분해야 합니다. 블록 크기를 10배 늘려 읽기 비용을 증가시키는 한편, 거래 수수료도 10배 인상해 쓰기 비용을 높이는 식입니다. 거래 수수료에 대한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1에 근접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실제로도 어느 정도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 지향적(또는 "오목한") 접근 방식은 어느 쪽에서도 결코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한 쪽에서는 너무 "중앙 계획적"으로 느껴졌고 다른 쪽에서는 너무 "우유부단"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큰 블록 지지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작은 블록 지지자들은 애초에 블록 크기를 적절히 늘리는 것에 대해 열려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담 백의 2/4/8 계획이 그 예시죠. 반면 큰 블록 지지자들은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단순히 블록 크기를 특정 수준으로 한 번에 올리자는 주장에서 급격하게 입장을 바꿔 블록 크기에 어떤 제한을 두는 것 자체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포괄적인 철학을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큰 블록 지지자들은 또한 채굴자들이 비트코인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비어가 효과적으로 비판한 철학입니다. 그는 만약 채굴자들이 블록 크기를 늘리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하기 위해 프로토콜 규칙을 바꾸려 한다면 - 예를 들어, 자신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것 -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견해를 빠르게 포기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비어의 책에서 큰 블록 지지자들에 대한 핵심 비판 사항 중 하나는 그들이 반복적으로 무능력을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비트코인 클래식은 코드 품질이 좋지 않았고, 비트코인 언리미티드는 불필요할 정도로 복잡했습니다. 또한, 큰 블록 지지자들은 오랫동안 와이프아웃 보호를 구현하지 않았고, 이것이 그들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역자주: 와이프아웃 보호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체인 재구성 공격(Reorganization Attack)'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
게다가 그들의 소프트웨어에는 심각한 보안 취약점이 존재했습니다. 큰 블록 진영은 비트코인 소프트웨어의 다양한 구현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제가 동의하고 이더리움에서도 채택한 원칙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내놓은 "대안 클라이언트"는 단지 비트코인 코어를 포크해서 블록 크기 증가를 구현하는 몇 줄의 코드만 변경한 수준에 그쳤습니다.
비어의 설명에 따르면, 코드와 경제학 모든 것에서 반복된 실수는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만들었습니다. 주요 큰 블록 지지자들이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라고 사기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속아 넘어간 것은 그들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렸습니다.
일반적으로 두 책을 읽어보면서 저는 큰 그림의 질문에서는 버에 더 자주 동의했지만 개별 세부 사항에서는 비어에 더 자주 동의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블록 크기를 늘려야 한다는 핵심 쟁점에 있어서는 큰 블록 지지자들의 주장이 옳았고, 사토시가 제안한 대로 깔끔하고 단순한 하드포크를 통해 이를 구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블록 진영은 기술적 측면에서 훨씬 실수가 적었고,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도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훨씬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큰 블록 진영의 일부 주장은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역량의 함정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얻은 종합적인 그림은 저도 암호화폐, 기업, 국가 정치 등 모든 종류의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보았던 정치적 비극입니다:
한 진영은 대부분의 유능한 인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능력을 편협하고 치우친 관점을 강요하는 데에 사용합니다. 반면 다른 진영은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키우는 데는 실패한 채 문제에 반대하는 데에만 몰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능한 쪽은 때로 독재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왜 이 진영을 지지하는지 물어보면, 대개 상대 진영은 불평만 늘어놓을 뿐이며 정작 그들이 주도권을 잡으면 몇 날 며칠 못 가 무너질 것이라고 답합니다.
물론 이것이 전적으로 반대 진영의 잘못은 아닙니다. 실전 경험을 쌓거나 실행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 없이 실행 역량을 갖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블록 사이즈 논쟁에서 큰 블록 진영은 실행 역량을 키우는 것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블록 사이즈에 관해 옳은 입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블록 진영은 생산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 주력하기보다 반대에만 몰두한 댓가를 여러모로 치러야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비트코인 캐시라는 독자적인 체인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블록 진영 내부의 분열로 인해 커뮤니티가 안정되기까지 두 차례나 더 분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을 "한쪽으로 치우친 역량의 함정"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이는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정치 조직, 프로젝트 또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근본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유능한 사람들은 그들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이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두 개의 상반된 집단이 대등한 수준에서 경쟁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것이고, 양 진영의 균형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균형이 한 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 버리면 전혀 다른 균형점으로 급격히 이동하게 되고, 이전의 안정점으로 되돌아오기가 몹시 어려워집니다.
어느 정도는 열세에 놓인 진영이 스스로 이 문제를 인식하고 능력 향상을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한쪽으로 쏠린 역량 문제가 완화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반대 운동들이 이 단계까지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때로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이러한 편향된 역량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하고 심층적인 방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덜 갈등하고, 더 많은 기술을
두 책 모두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누락된 한 가지가 무엇보다도 제게 눈에 띄었습니다: "영지식 스나크(ZK-SNARK)"라는 단어가 두 책 모두에서 정확히 0번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변명의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도 ZK-SNARK와 그것이 확장성(및 프라이버시)을 혁신할 수 있는 잠재력은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캐시(Zcash)는 2016년 10월에 출시되었습니다. ZK-SNARK의 확장성 의미는 2013년 그레고리 맥스웰에 의해 조금 탐구되었지만, 비트코인의 미래 로드맵에 대한 논의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타협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입니다. 양측에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의 발견입니다. 우리는 이더리움에서 이러한 사례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BLS 집계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이더리움의 지분증명(PoS) 시스템이 더 많은 검증자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최소 스테이킹 금액을 1500 ETH에서 32 ETH로 대폭 낮출 수 있었고,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가능케 했습니다. 최근 진행 중인 서명 병합(signature aggregation) 작업은 이러한 확장성을 더욱 개선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EIP-7702는 이더리움 개선 제안(Ethereum Improvement Proposal)의 일종으로, 기존의 ERC-3074가 달성하려 했던 목표를 스마트 계약 지갑과의 호환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구현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관련 논쟁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블롭(blob)을 활용한 다차원 가스 개념의 도입으로 이더리움의 롤업 데이터 저장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블록 크기를 늘리지 않고도 이를 구현함으로써 보안 리스크 증가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한 생태계가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는 것을 멈추면 불가피하게 침체되고 동시에 더 논쟁적이 됩니다. "내가 사과 10개를 더 얻는다"와 "당신이 사과 10개를 더 얻는다" 사이의 정치적 논쟁은 본질적으로 "내가 사과 10개를 포기한다"와 "당신이 사과 10개를 포기한다" 사이의 논쟁보다 훨씬 덜 갈등을 일으킵니다.
손실은 이득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공동체의 "유리창을 깨부수는" 극단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탈성장'과 같은 아이디어나 "사회문제 해결에 기술은 무용하다"와 같은 주장에 강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누가 더 많은 것을 얻느냐를 두고 다투는 사회가 누가 덜 잃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사회보다 훨씬 더 조화롭고 안정적일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해 보입니다.
비트코인이 앞으로 기술 중심의 생태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 여부는 비트코인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최근 인스크립션(Inscription)과 BitVM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기능을 개선하고 확장함으로써, 비트코인 레이어 2 솔루션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우디 워트하이머는 이더리움이 ETF(상장지수펀드)를 획득하게 되면 마이클 세일러로 대표되는 비트코인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이른바 '세일러리즘'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비트코인 커뮤니티 내부에서 기술 혁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단순한 가치 저장 수단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기술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드 워트하이머의 이론대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것에 대해 왜 신경 쓰나요?
저는 이더리움을 띄우기 위한 방법으로 비트코인을 깎아내리고 싶어서 비트코인의 성공과 실패를 조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비트코인이 사회학적으로 복잡하여 두 권의 책을 써낼 수 있을 만큼 풍부하고 매혹적인 내부 토론과 분열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이더리움과 제가 관심을 갖는 다른 디지털(심지어 물리적) 커뮤니티가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엇이 잘됐으며,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이해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이더리움이 클라이언트 다양성을 중시하게 된 데에는 비트코인이 단일 클라이언트 팀에 의존함으로써 겪은 문제들을 목도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이더리움의 레이어 2 솔루션은 비트코인의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그 위에 구축할 수 있는 레이어 2의 유형과 신뢰 속성이 제한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개발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더리움이 다양성을 지향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려 노력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비트코인 블록 사이즈 논쟁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한쪽으로 치우친 역량의 함정을 피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사례는 네트워크 국가 운동입니다. 네트워크 국가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주류 사회로부터 일정 수준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문화와 기술의 미래에 대한 그들만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전략입니다. 그러나 비트코인 캐시가 포크 이후에 보여준 경험은 문제 해결을 위해 포크를 중심으로 조직된 운동이 빠질 수 있는 공통적인 함정을 잘 드러냅니다.
이런 운동은 끊임없이 분열을 거듭하며 구성원 간 협력을 이루어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 캐시의 사례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더 광범위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국가 역시 구상을 실제로 구현하고 만들어 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모임을 갖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트위터에서 현대 브루탈리즘 건축물과 16세기 유럽 건축물을 비교하는 밈을 공유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저 또한 주잘루를 통해 이런 변화를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트코인 역사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비어의 "블록사이즈 전쟁(The Blocksize War)"와 패터슨과 버의 "하이재킹 비트코인(Hijacking Bitcoin)"을 모두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단순히 비트코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마음가짐으로 두 권의 책을 읽을 것을 추천합니다.
오히려 이 책들은 "디지털 국가"의 첫 번째 진정한 내전이었으며, 그 경험은 우리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구축할 다른 디지털 국가에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비탈릭 부테린이 2024년 5월 31일에 자신의 블로그에 업로드한 "Some reflections on the Bitcoin block size war" 아티클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 글은 원저작자의 요청에 따라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